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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정치 고려의 성립과 후삼국 통일 왕건의 성장 : 궁예의 부하가 되어 후백제의 금성(나주)를 점령하며 성장하였고 궁예가 폭정하자 궁예를 축출하고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 고구려를 계승하여 국호는 '고려'라 하고 송악(개경)으로 천도한다. 후삼국 통일 : 927년 견훤의 후백제군에게 공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신수겸이 전사하였으나 이후 고통 전투에서 승리하고 935년에는 신라를 통합하였으며 황산 전무에서 승리하고 후백제는 멸망하게 되었고 후삼국이 통일된다. 고려의 정치 태조 고려의 태조는 민생 안정책으로 흑창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고 혼인정책을 통해 호족을 통합하려 하고 사심관 제도와 기인 제도를 실시하였다. 북진 정책으로 발해 유민을 포용하고 거란을 배척하며 서경(평양)을 전진 기지로 삼고 청천강에서 영.. 2024. 3. 11.
고대 통일 신라, 발해의 발전 통일 신라 발전 전제 왕권의 강화 태종 무열왕 :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이후 무열왕 직계 자손이 왕위를 세습하였으며 나·당 연합을 결성하고 백제를 정벌하였으며 통일 전쟁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문무왕 : 고구려를 정벌하고 나·당 전쟁에서 승리한 후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676년) 신문왕 :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진골 귀족을 숙청하였으며 중앙 정치 기구로 집사부 등 14부와 지방 행정 조직인 9주 5소경을 추진하고 군사 조직은 9서당 10정으로 정비하였다.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으며 이로 인해 진골귀족의 경제 기반은 약해져 갔다. 유학 교육을 위해 국학을 설치하고 6두품을 중용하였으며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건립하였다. 통치 제제의 정비 중앙 : 집사부 시중의 권한을 강.. 2024. 3. 10.
930년 고창 전투 배경 전개 영향 후삼국 시대 930년 고창(지금의 안동)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일어났던 전투로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 견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 이 전투로 후백제는 쇠퇴하고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배경 안동과 합천 지역은 후삼국시대의 패권을 다투는 요충지로써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은 이들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연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해 나갔다. 920년 견훤은 보마군 1만인으로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군사를 진례성으로 보내게 되는데 이때 다급해진 신라 경명왕은 고려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안동 및 상주 지역에서의 전투는 연일 치열해지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고려가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925년에는 견훤이 조물성을 공격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 2024. 2. 28.
여러 나라의 성장(부여, 동예, 고구려, 옥저, 삼한) 고조선이 멸망되고 난 이후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부여, 동예, 고구려, 옥저 그리고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성장하였다. 각 나라의 특징과 문화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여 부여는 쑹화강 유역의 평야 지대에서 성장을 시작하였으며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였다. 부여에는 왕 아래 여가 '가'들이 각기 다스리는 행정 구역인 사출도가 있었다. 사출도 : 나라에는 군왕이 있고 가축 이름으로 벼슬 이름을 정하여 마가, 우가 , 저가, 구가 등이 있다. 제가들은 별도로 사출도를 나누어 맡아본다. 큰 곳은 수천 가이고 작은 곳은 수백 가이다.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 라고 하거나 '죽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사회 질.. 2024.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