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성립과 후삼국 통일
- 왕건의 성장 : 궁예의 부하가 되어 후백제의 금성(나주)를 점령하며 성장하였고 궁예가 폭정하자 궁예를 축출하고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 고구려를 계승하여 국호는 '고려'라 하고 송악(개경)으로 천도한다.
- 후삼국 통일 : 927년 견훤의 후백제군에게 공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신수겸이 전사하였으나 이후 고통 전투에서 승리하고 935년에는 신라를 통합하였으며 황산 전무에서 승리하고 후백제는 멸망하게 되었고 후삼국이 통일된다.
고려의 정치
태조
고려의 태조는 민생 안정책으로 흑창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고 혼인정책을 통해 호족을 통합하려 하고 사심관 제도와 기인 제도를 실시하였다. 북진 정책으로 발해 유민을 포용하고 거란을 배척하며 서경(평양)을 전진 기지로 삼고 청천강에서 영흥까지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정종
왕규의 난을 진압하고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을 창설한다.
광종
광종의 목표는 왕권의 강화였다.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공신과 호족 세력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며 과거제를 실시하여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진 세력을 등용한다.
관리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공복을 제정하고 공신과 호족 세력을 숙청하며 황제를 칭하고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
경종
태조 때 시행한 역분전을 대신하여 전시과 제도를 마련한다.
성종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채택하여 유교 정치 실현을 축구하고 2성 6부의 중앙 관제를 마련하고 전국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며 향리 제도를 마련한다.
과거제를 정비하고 국자감을 설치하며 지방에 경학박사, 의학박사를 파견한다. 연등회의 규모를 축소하고 팔관회를 폐지하는 등 국가적인 불교 행사를 억제한다.
통치 체제의 정비
중앙 통치 조직 : 2성 6부
고려의 중앙조직은 당의 영향으로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중서문하성 :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관서이고 장관은 문하시중이라 하고 재신은 2품 이상으로 정책 심의와 결정을 담당하며 낭사는 3품 이하이며 정치의 잘잘못을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 상서성 : 실제 정무를 담당하는 이·병·호·형·예·공부의 6부를 통솔하는 정책의 집행을 담당한다.
송의 영향으로 중추언, 어사대, 삼사를 구성하며 중추원은 2품 이상으로 군사 기밀을 담당하는 추밀과 3품의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승선으로 구성된다. 어사대는 관리 감찰, 풍기 단속을 담당하고 삼사는 화폐와 곡식의 출납과 회계를 담당한다.
독자기구인 도변마사는 국방, 군사 문제를 담당하고 후기에는 도평의사사로 바뀐다. 식목도감은 대내적인 법제와 격식을 관장하며 이 두 기구는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이 모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회의 기구이며 고려의 독자적 기구이며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보인다.
대간은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로 구정되고 간쟁, 봉박, 서경의 권한을 행사하는 역할을 하며 정치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지방 행정 조직 : 성종 때 12목 설치, 이후 5도 양계로 정비하여 3경 4도호부 8목 설치
5도에는 안찰사를 파견하고 지방관이 파견된 주군,주현보다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 속현이 더 많고 특수 행정 구역인 향, 부곡, 소가 존재한다.
양계(군사)는 군사적인 특수 행정 구역이고 병마사를 파견하고 국방상 요충지에 진을 설치한다.
군사조직
중안은 2군 6위로 구성하고 지방은 16세~59세의양인 장정으로 편성하고 주현군은 5도의 일반 군현에 주둔, 평상시에 농업에 종사하는 일종의 예비군이며 주진군은 양계에 주둔, 국경 수비를 당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