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는 역사 이전의 시대는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문자로 기록된 것을 말하므로 선사 시대는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시대를 말하고 유물이나 유적지를 통해서 선사 시대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1.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년 전부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초기에는 주먹도끼, 찍개와 같은 뗀석기를 사용하고 후기에 이르러 슴베찌르개 등과 같은 잔석기를 사용하였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사냥, 채집, 물고기잡이 등을 통해 식량을 구했으며 잡아온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살았으며 이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동굴이나, 강가에서 막집을 짓고 살았으며 경험이 많은 연장자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살았고 평등 사회의 생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동굴의 벽에 다양한 짐승의 모습을 그리거나 여러 조각품을 제작한 것을 미루어 보아 사냥의 성공과 다산을 기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주요 유적지로는 연천 전곡리, 공주 석장리, 단양 금굴, 단양 수양개 등이 있으며 특히 청원 두루봉 동굴 유적에서는 어린아이(흥수아이)를 매장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
2.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는 약 1만 년전(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갈돌, 갈판과 같은 간석기를 사용하였으며 대표적인 토기로는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등이 있으며 이러한 토기는 식량을 저장하고 음식 조리에 이용되었다.
옷과 그물을 제작하기 위해서 가락바퀴와 뼈바늘이 사용되었으며 밭농사와 같은 농경이 시작되고 목축을 통해 식량을 생산하였다. 사냥, 채집, 물고기잡이도 여전히 식량을 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거주하면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주거의 형태는 반지하이고 바닥은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나 원형의 형태를 띠었다.
씨족 중심의 부족 사회이며 아직까지도 평등한 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시 신앙으로는 자연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 부족의 기원을 특정 동물 또는 식물과 연결하는 토테미즘, 인간 세계와 초자연적인 존재를 연결하는 무당과 주술을 믿는 샤머니즘이 발달했으며 사람은 죽어도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영혼과 조상을 숭배하였다.
주요 유적지로는 서울 암사동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부산 동삼동 유적, 제주 고산리 유적 등이 있다.
3.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년경~기원전 1500년경부터 시작하였으며 청동기는 무기, 의식용 도구, 장신구 등을 제작하는 데 사용되고 비파형 동검, 거친무늬 거울, 청동 방울 등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반달 돌칼 등 간석기가 농기구로 사용되고 대표적이 토기로는 민무늬 퇴기, 미송리식 토기가 있으며 탁자식의 고인돌, 비파형 동검 등이 출토된 위치로 고조선의 문화 범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배산임수의 취락 형태를 보이고 구릉 지대에 주거지를 형성하였으며 직사각형 모양의 집터나 움집은 점차 지상 가옥으로 발전하였다.
조, 보리, 콩, 수수 등을 재배하는 밭농사 중심이지만 벼농사도 시작하였고 가축을 사육하는 것도 점점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농업 생산력이 확대됨에 따라 잉여물이 발생하고 비축함으로써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고 사유 재산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재산에 따라 계급이 생기고 군장(족장)이 출현하였으며 제정일치의 사회 모습을 보였다.
사양 및 물고기잡이의 성공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였으며 스스로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는 친손 사상을 내세우며 주변 마일이나 집단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부여 송국리 유적, 여주 흔암리 유적 등이 있다.
4. 철기 시대
철기 시대는 기원전 5세기경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1세기 경 한반도 전역에 철기가 보급되었으며 세형동검과 잔무늬 거울 등의 청동기를 제작하고 거푸집을 이용하여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 발달에 기여하였다.
쟁기, 쇠스랑 등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향상하였고 그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 계층도 점점 세분화 되었으며 교역이 확대되었다.
철제 무기의 사용은 정복, 전쟁, 부족 사회의 통합을 촉진하였고 민무늬토기, 덧띠 토기, 검은 간 토기는 철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무덤의 형태는 넘무덤과 독무덤이 있으며 벼농사가 발전하고 가축 사육도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만주와 한반도에 여라 나라가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