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단군신화에서 조선을 위만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으며 그 뒤로는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 불려졌다. 고조선 성장과 발전 그리고 명망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조선 성장
단군 건국 이야기
'하늘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이 땅에 내려왔다'
단군의 건국 이야기 중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건국을 하였다는 것은 선민사상,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내용은 홍익인간의 건국 이념이 반영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웅은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들을 데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었다.'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인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왔다는 것을 통해서 고조선이 건국될 무렵에 지배 계급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농업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환웅이 잠시 남자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니'
황웅과 웅녀의 결합은 환웅 부족이 곰을 숭배하는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군왕검은 자라서 아사달에 도읍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단군왕검이라는 칭호를 통해서 고조선이 제사장 단군과 정치적 지배자 왕검이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 사회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조선 8조법
중국의 역사서 '한서'에서 고조선의 사회 모습을 엿볼 수 있는 8조법(범금 8조) 가운데 3개 항목이 기록이 되어 있다. 이 3개 항목을 통해서 고조선은 생명과 노동력을 중시하였으며 사유재산을 인정한 농경사회이며 계급이 형성되고 화폐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8조법 3개 항목은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같는다',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용서를 받고자 하는 자는 한 사람마다 50만 전을 내게 한다.'
고조선 발전
고조선은 기원전 4~3세기경 중국의 연과 대립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연과 대립하고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기원전 3세기경 부왕, 준왕 등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고 왕 아래에는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두기도 하였다.
위만 조선 발전
위만은 중국에서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준왕의 신임을 받아 서쪽 반경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이후에 세력을 밀집하여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었다.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키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다.
이후 철제 무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막강한 세력을 확장하며 고조선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융성했던 시기이며 중국의 한과 한반도 남부의 진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거두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남쪽 부족국가 진의 특산물을 중국의 한나라에 파는 중계 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거두었는데 고조선의 위치가 진과 한의 중간에 위치하여 진이 직접 한나라에 특산물을 파는 것을 가로막게 되었고 결국 한나라의 침입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고조선 멸망
중국에서 한나라가 동북아 최강국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을 무렵 중국의 제7대 황제인 한 무제는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우거왕 때 조선상 역계경은 왕에게 올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리를 이끌고 진국으로 남하하였는데 이때 위기감을 느낀 한 무제는 대규모 군대를 보내 왕검성을 공격하게 됩니다.
1년여 동안 계속된 한의 공격을 고조선은 저항하였는데 이때 지배층이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한과의 친분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우거왕을 죽이게 되고 한이 결국 고조선을 함락하면서 고조선은 멸망하게 됩니다.
한은 고조선 일부 지역에 낙랑군 등 여러 군현을 설치하지만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은 토착민의 거센 저항에 못 이기고 곧 폐지되었으며 낙랑군은 4세기에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을 받게 되고 결국 축출되고 맙니다.
고조선 멸망 이후
고조선이 멸망하고 난 이후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